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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경하고 흠모해 마지 않는 친구가 민주주의, 정확히는 아테네 민주정에 대한 짧은 생각을 썼기에 이런저런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본다.

분명 그의 말마따나, 누가 인민인가를 묻지 않는 민주주의란 공허하기 이를 데 없다. 즉,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어원적 규정은 사실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아무것도 얘기해 주지 않는 것이다! 어찌보면 지금껏 학교에서 이 어원적 규정으로부터 이끌어냈던 학생들의 아마추어리즘적 민주주의론은 통째로 사기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누가 인민인가를 묻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그 자체라는 것. 여기에 대해서도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내포된 인민의 개념을 원용할 수 있다. 즉 인민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주어진 생득적, 자연적 주체 개념이 아니라 언젠가 성취되어야만 할 목적적, 구성적 개념이다. 이러한 구성적 개념으로서의 인민은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논하듯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며, 정의상으로(in definition) 모든 결정에 대한 최고한도의 배타적 주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란 이러한 인민을 구성하는 것, 즉 '우리가 인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선언하여 관철시키는 것이 모든 것이며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민을 선언하여 그것을 관철시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 왜냐면 그 순간 구성된 인민은 정의상으로 우리가 목적했던 민주적 주권을 행사하게 될 테니!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아테네 민주정이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내 친구의 논평은 사실상 별 의미 없는 언명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이 던진 '누가 인민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을 내놓았고, 그 대답에 의해 아테네 인민이 구성되었으며, 그 인민은 그 자체로 민주적 주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민주적이지 않다'는 시/공간적 외부인의 논평은 말 그대로 참견일 뿐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분명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나친 폭론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진짜 폭론이니까.

다시 한 번 최초의 전제를 보자. 누가 인민인가를 묻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그 자체이다. 여기서 우리가 보는 민주주의란 사실상 인민의 구성 완료가 아닌 인민의 구성 과정이다. 즉 위의 폭론은 누가 인민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인민인가에 대해 '물어서 얻은 답'을 민주주의로 착각하는 데서 발생한다.

즉 이렇게 본다면 중요한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누가 인민인가를 묻는 것, 인민에서 배제되는 자들이나 인민 자체의 파편화를 추적하며 지속적으로 인민을 구성하는 것만이 민주주의의 지속성을 담보한다는 진실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적 개념 형태와 달리 민주정은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이 결론이다. 이미 구성이 완결된 '인민'에 의한 민주정은 공허하며, 어떻게 표현하면 민주주의의 유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구성된 민주정은 결국 자신을 구성한 인민 자체를 붕괴시키며,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역사상 수많은 민주정들의 사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란 단순히 과정적 개념, 운동적 개념에 불과한가? 고대부터 정치사상가들이 희구했던 시스템으로서의 정치란, 아나키스트들의 주장대로 파시즘으로 가는 필연적 경로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단순한 안정적 재생산 사이클이라는 의미에서의 제도화는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적 3분법을 절대 벗어나오지 못한다. 그곳에는 백날 찾아봐도 민주주의가 없다. 그렇다고 예측할 수 없는 대중의 역동성에 의존하는 아나키스트의 클리나멘적 구상 역시 민주주의엔 다가가지 못한다. 왜냐면 통제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타이밍에 우발적으로 분출하는 것을 우리는 정치가 아닌 사고, 내지는 재해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우발적 역능은 번개처럼 한순간의 폭발력은 있어도 금방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다시 언제 올 지 모르는 때로 유예된다. 문제는 바로 운동의 제도화에 있다.

다시 말해, 누가 인민인가를 묻는 집단지성적 행위를 구조적으로 유인하고 이끌어낼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구조가 무엇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 어떤 사회적 자극을 통해 인간을 그렇게 유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단 한 번 번쩍하고 마는 번갯불도, 잘 만들어진 화덕 깊숙히 넣어져서 겨우 등 덥힐 온기만 내놓는 화덕도 안 된다. 강대한 자연력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내어 활용 가능한 형태로 바꾸어내는 발전소처럼, 우리는 대중의 역능을 통제하여 그것을 지속적으로 흐르게 만들어야 한다.

결론을 다시 한 번 검토하자. "누가 인민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 그리고 그 질문의 제기 자체를 영속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며 이는 민주정과도 무정부와도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영속케 할 수 있는 수단을 탐구하는 것이 현시대 모든 정치학도들의 임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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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잉여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