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현대차 노조는 지난 임시 대의원회의에서 현대차 장기근속자 자녀의 정규직 우선채용을 요구하는 안을 올해 단협의 공식 요구안으로 통과시켰다.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은지 오래고,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자본의 총공세가 몰아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러한 결정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짓이거나, 아니면 노동계급 전체에 대한 배신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사실,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나날이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모든 인민의 삶이 불안정해지는 이 시대에, 노동자이기 이전에 자식 가진 한 명의 부모로서 자식의 앞날에 조금이나마 안전판을 깔아 주고자 하는 그 마음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더욱이 그 오랜 시간 동안 현대차 자본에게 잉여가치를 착취당해 가면서 살아온 그들이, 자신들이 지금껏 바친 만큼의 대가를 내가 아닌 내 자식들에게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분명 그들 - 현대차 자본에 대해서만큼은 부당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와 이번 결정을 환영하는 정규직들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만약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이 모든 곳에서 패배하여, 자본의 어떠한 착취와 핍박에도 손쓸 수 없을만큼 분쇄된다면, 그 때가 되어서도 현대차 노조와 정규직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섬처럼 남아 있을 것 같은가? 그 누구도 노동해방을 말할 수 없고, 도대체 어떻게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도 모호해진 비정규직의 지옥 속에서 현대차 정규직만큼은 반석 같은 방주로 남아 있을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고립된 노동자들은 비록 집단일지라도 결국 우월한 역관계에 있는 자본의 지칠 줄 모르는 공세에 해체되어 갈 것이다. 정규직 우선채용이라고? 그 채용되는 정규직의 숫자가 계속 줄고 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결국 노동자는 하나의 계급으로서 서지 않는 한 절대 승리할 수도, 인간답게 살 수도 없다.

따라서 그들이 이번 결정을 통해 자식들에게 물려주게 되는 것은 결코 안정적인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노예의 사슬이며, 그것도 그 자식들과 함께 싸워줄 미래의 동지들의 목을 조르는 사슬이다. 그들은 자식들에게 투쟁할 수 없는 미래를, 동지가 없는 미래를, 해방을 꿈꿀 수 없는 미래를 물려주려고 하고 있다. 즉 그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사슬에 묶인 노예로서의 미래를 물려주려고 하고 있다.

지금도 울산에서, 전주에서, 전국 곳곳에서 가열찬 투쟁을 만들어 가고 있는 비정규직 동지들을 보라! 그들에겐 누구처럼 세습되어 주어진 안정 같은 것은 없지만, 자기 자신과 동지들을 믿고 노예의 사슬을 거부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이 자본이 주인된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스스로 주인되는 길을 택했다. 마르크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한 서설>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단지 사슬에 꽃을 장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슬 그 자체를 벗어던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 대의원과 그들을 지지하는 정규직들이 진정 자신들의 고단한 노동과 기름밥의 삶 속에서 무언가를 건져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면, 그것은 꽃으로 장식한 사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들이 한때 그 이름도 찬란했던 민주노조를 건설하면서 얻은 귀중한 교훈, 즉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사슬을 끊고 벗어던져야 한다는 그 깨달음이어야만 한다. 당신들의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선물하고 싶다면, 그것은 직위세습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해방을 위한 연대투쟁이어야만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Posted by 잉여좌파